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난창 군무선후회의 (문단 편집) === 군제 개편 토론 === 1월 5일 장제스는 군, 사, 단, 영, 진을 단위로 3-3제로 편제되어 있던 군대 편제 중에 여를 없애고 1군 3사, 1사, 3단제의 편제로 통일하고 각군에 대한 검열을 실시하도록 하여 총사령부에 일괄적인 통제와 일률적 지휘체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또한 공식적인 난창회의록에는 없으나 한커우 민국일보에 따르면, 장제스는 각군 군장직을 철폐하고 사단 단위를 기본으로 군제를 개편할 것을 주장했다고 하는데 장제스는 광저우 국민정부 시절부터 자신이 국민혁명군 총사령관으로 국민혁명군을 통솔하고 휘하의 군장직을 철폐하여 통제권을 강화하는 정책을 펼친 바가 있다.[* 이로 인한 각 군장과 장제스의 불화 사이에서 [[왕징웨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설프게 군사적 권위를 구축하려고 시도한 것이 [[중산함 사건]]의 한가지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군제개편을 통한 통제력 강화가 사실이라고 가정할 시에, 군장직의 철폐는 장제스가 일관적으로 추구해온 정책이기도 했으나 강서 전선에서의 패전과 군사력 손실로 인하여 정치적 권위가 약화되어 있던 장제스의 입장에서는 국민혁명군 내부의 1인자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한가지 방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군장들 입장에서는 군비 때문에 코가 석자인건 둘째치고 자신들의 정치적 권위를 약화하려는 술책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 결코 좋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1월 6일에 개최된 3차 회의에서도 리쭝런 등 다른 군장들은 군비 지급고가 군수품 보급 문제만을 물고 늘어졌다. 특히 탕성즈는 휘하 병력이 우창 점령 이후 6개 사단, 11개 여단, 31개 단으로 엄청나게 증가하면서 자신의 병력을 3개군으로 재편해줄 것을 거듭 요구하고 있었다. 장제스는 4군 휘하의 [[천밍수]] 부대를 11군으로 확충하도록 하는 것은 일찍이 승인했으나 탕성즈의 요구는 군비 증가를 이유로 나중에 얘기하자며 묵살하고 있었는데 탕성즈의 불만이 커지면서 장제스는 이것을 더 이상 억누르기 힘든 상황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